균형을 잡는 행위 학생 댄스 그룹은 캠퍼스에서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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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이상적인 방향과 방법은 무엇일까, 또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바는 무엇일지를 밤낮으로 고민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행정고시를 통해 경제관료가 되어서 국가 단위의 경제 정책 수립에 기여하는 꿈도 키웠고요. 그러면서 악으로 공부하던 것이 점차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 갔던 것 같아요.
그래도 다행히 두 달 정도 밥먹고 코딩만 할 정도로 열심히 배우니까, 어느 정도 진도를 따라갈 수 있었고 고생을 한만큼 얻어가는 것도 많았어요. 제가 관심을 가지고 도전을 하지 않았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일을 해내고 난 후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쁜 것 같아요. 그러한 경험 덕분에 동아리 활동에 대한 열정이 더 커졌고, 최근에는 지난 학기부터 열심히 활동했던 경제 동아리의 부회장 역할을 맡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기도 했어요.
다시 한번 확인해주세요!
이번 학기부터는 언론정보학과 복수전공 승인을 받아 공부하고 있습니다. 운경재단과의 인연으로 PR에이전시 인턴에 합격하여 여름부터는 국제적인 문화행사와 관련된 갤러리 PR, 전시 기획, 보도 자료 작성․취합 등 실무를 배우게 될 것 같아요. 넓게 보면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예술에 대한 관심과 역량을 끌어낸다는 점에서 저의 최종적인 목표와도 닿아 있는 일입니다.
- 이러한 경험은 정치외교학에 대한 흥미와 열정을 높여주었고, 정치외교학자를 꿈꾸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어렸을 때부터 법학이 좋았던 저는 관련 서적도 읽어보며 법조인의 꿈을 키워왔던 것 같습니다.
- 한동안 영화를 보는 이유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 저는 (저만의 생각일지라도) 창의적인 사고와 기획을 많이 합니다.
- 재단에서 장학생들에게 단순한 금전적 지원을 넘어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시켜 주려는 노력이 저에게는 정말 인상적이에요.
- 군 입대 전까지만 해도, 혼자 고민하고 실행하던 때가 많았고, 생각의 범위가 자취방이라는 한정적인 공간 내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학업으로 유명한 곳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며 성장을 한 것이 제 인생에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서른이 되면, 마흔이 되면, 게다가 쉰이 되면 인생에 대한 답이 척척 나올 줄 알았어요. 선배로서 뭔가 확신에 찬 이야기를 해줄 수 있어야 도움이 될 텐데 말입니다.
그러한 모든 것에 담긴 여운을 사랑합니다. 저 또한 누군가에게 그러한 여운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리 높은 성적은 아닐지 몰라도, 스스로 노력해서 무언가를 해냈다는 것에 처음 성취감이 느껴졌던 순간이었습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몰랐기에 무작정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고, 자취를 허락해 준 가족의 믿음에 부응하고자 하는 마음 또한 컸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항상 제가 비교적 즐겁고 긍정적이면서도 관계 지향적인 사람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부모님의 영향이 정말 컸다고 생각해요.
제가 갖고 있는 가장 확실한 강점은 목표가 생기면 누구보다 몰두할 자신이 있다는 거예요.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분명히 구분하고, 방해가 되는 것들은 확실히 배척하는 의지는 자신있게 내세울 수 있습니다. 지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 다짐에 맞는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에요. 구체적인 방향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공직이 됐든 민간 분야가 됐든 배운 걸 꼭 이 나라 경제 발전을 위해 쓰고 싶다는 다짐만큼은 분명합니다. 막상 공부를 하겠다고 재수학원에 찾아갔는데, 저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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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이에 암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으니까요. 운이 좋게 조기에 발견을 해서 항암치료는 전혀 하지 않고 위 절제 수술만 했어요. 그 일 이후로 음식과 스트레스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달았죠.
살도 10kg이상 빼고, 밥을 500kcal 이상 못먹었던 날도 많았고, 매일 무용 연습을 하면서 어깨며 등이며 무릎이며 피멍이 안 드는 곳이 없었으니까요. 지금 제가 연기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다시 돌아가도 저는 연기를 할 것 같아요. 아마 죽을 때까지 그날들은 평생 못 잊을 것 같아요. 그 꿈은 물리학자라고 이미 앞서 말했지만, 정확히는 세상에 물리학자로서 이름을 남긴 사람이 되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의료진이 되어 사람을 돕고 싶다는 어릴 적 꿈이 또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 아닐 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과 분야 중에서 가장 환자의 상태가 드라마틱하게 보이는 분야죠. 그만큼 환자의 건강이 눈에 띄게 좋아졌을 때 큰 보람을 느끼는 과이기도 합니다.
거창해 보이지만 지극히 미시적이며 개인적인 고민들이 저를 움직이는 화두입니다. 아마도 평생 안고 가야 할 문제일 것입니다. 전역 후 한 달이 다 되어 갈 때 즈음, 고등학교 친구들의 제안으로 함께 3주 동안 제주도 배낭여행을 떠났습니다. 각자 15kg 무게의 가방을 메고, 제주도 한 바퀴를 걸어 다녔습니다. 숙식은 시설을 이용하지 않고 걷다가 괜찮은 장소가 있으면 그곳에 캠핑 장비를 꺼내 원하는 시간만큼 지내다가 다음 장소로 옮겨 다니는 여행이었습니다.
주오대학에서 걸출한 기업인부터 정치인까지 굉장한 많은 분을 배출했는데 그 중에 동상이 있는 분은 운경선생님밖에 없거든요. 저희 회사가 일본건설시장에 처음 진입했을 때가 92년인데 그때는 시장이 850조원 규모였어요. 그러다가 90년대 말부터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10년에 450조원으로 반토막이 났죠. 근래에는 동일본대지진 피해복구공사, 도쿄올림픽 등의 호재를 발판으로 500조원까지 규모가 회복되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에서 우연을 기회로 움켜진 사람인 것 같아요. 우연적 사건이 어떤 이에게는 기회로 바뀔 수 있는 것이죠. 기회라는 문은 무수히 작은 실천을 통해 우연인 듯 열리기 때문에, 별다른 노력 없이 운명 같은 행운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엄청나게 감동적인 말도 아니었는데 항상 제 가슴 속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암흑 같은 시간 속에서 방황하던 저를 아버지는 항상 격려해주고 믿어주면서 조용히 기다려 주셨습니다. 내가 진심을 다해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이번 코로나19를 봐도 이 안에 트렌드가 있어요. 그런 변화를 얼마나 빠르게 흡수해서 서비스화 하느냐 이거든요. 경영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민첩하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